ezdarkroom - 유곡리(선전촌) 사진, 2002-2006
BLOG main image
전체 (46)
포트폴리오 (11)
카메라 루시다 (24)
카메라 옵스큐라 (4)
사후처리와 보존 (1)
사이트소개 (1)
디카다이어리 (5)
40213 Visitors up to today!
Today 18 hit, Yesterday 40 hit
[강용석, 2006/10/09 14:29, 포트폴리오/Main Portfolio]

                                                            유곡리(선전촌) 사진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

       위 지명은 언뜻 보아서 강원도 산골의 한 마을 지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최전방 국군 초소가 가로막고 있다. 민간인은 그 초소로부터는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즉 민간인 통제구역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 초소를 지나 다시 30여분을 차로 더 달리면 바로 비무장지대(DMZ)가 시작되는 철책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북한군 초소가 2km 전방에 위치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철책과 맞닿아 위치한 마을이 바로 유곡리이다.

       이 마을을 가는 길목엔 용치(용치)라 하는 방호석이 길가에 드문 드문 놓여있다. 용치는 원래 전쟁 발발 시 북에서 내려오는 탱크나 장갑차 등 중화기 차량의 남하를 지연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논 것이다. 다른 지역은 보통 콘크리트로 만든 방호벽이 존재하는 반면, 이곳은 화산지대였기 때문에 현무암이나 화강암으로 마치 고인돌 모양으로 쌓아놓았다.

       이곳은 원래 마을이 위치할 지역이 아니었다.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바로 앞산이 북한의 오성산이다. 오성산은 한국 전쟁 당시에 남과 북이 치열하게 혈전을 벌이던 바로 그곳이다. 현재는 북한 땅이다. 그 남쪽이 그 유명한 백마고지이다. 우리 국군은 백마고지를 탈환했고, 북한군은 오성산을 점령했다. 이러한 지형적 환경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이 바로 유곡리이다. 유곡리는 자연스레 형성된 전통 마을과 달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계획 하에 세워진 인위적인 마을이다. 소위 통일촌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선전촌이다. 선전촌이란 생경한 단어는 분단국가에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다. 

       한국 정부는 1973년 파주와 철원 두 곳에 선전촌을 건립했다. 선전촌은 북한에서 바로 바라다 보이는 지역에 선진국 형으로 주택과 도로를 정비하여 건설된 마을이다. 집들은 모두 똑같은 형태로 깨끗하게 지어졌고, 그 주변은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북한 사람들에게는 남한 농촌의 전형적 모습인 것처럼 보여 지도록 꾸며진 마을이었다. 이를테면 진짜 같은 가짜 마을인 셈인데, 북한의 선전촌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곳엔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처음 이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공관이 투철하고 신체 건강한 군 전역자들인 걸 보면 아무나 입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들에게는 주택과 농지를 무상으로 임대했고 자급자족해서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2006년 현재는 이곳 주민들이 입주한 지 33년이 되는 해이다. 처음 입주할 당시 30-40대 나이의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이젠 거의 노인이 되어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농촌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게다가 2001년 이곳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했던 국방부 소유의 최전방 지역의 경작지 대부분을 공매로 외지인에게 처분했다. 이곳 주민들은 유곡리로 처음 입주했을 때 지뢰 등의 폭발물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또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전방 선전촌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억척스럽게 토지를 개간하며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정부와 국방부가 아무런 통고도 없이 외지인에게 이 지역의 땅을 매각해 버린 것에 대해 유곡리 주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농촌의 과장된 삶을 선전하기 위한 선전촌의 무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이  선전촌 무대에 처음 올라와 낳았던 자식들은 무대를 떠나 외지로 나가 살고 있고 무대엔 다시 노인이 되어버린 옛 부부 배우들만 힘겨운 농민의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서 활기찬 농민의 배역도 북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선전했던 구호도 진부해졌다. 정부는 이제 용치를 방호석이 아닌 자연석으로 되돌려놔야 하고,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전촌 무대의 배우 분장을 벗겨내고 자연촌에서 편안하게 살게 해야 하는 연출을 새로 시도해야 할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ezdarkroom.com/tt/trackback/52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1 .. *5 *6 *7 *8 *9 *10 *11 *12 *13 .. *46